[캠퍼스 너머] 나는 내성적이다

글 : 이원재

이제 거의 10년 전 일이다. 나는 미국 MIT 경영대학원 반원형 강의실 교단에 서 있었다. 하루치 수업을 진행하는 역할이 MBA학생이던 내게 맡겨졌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다. 그 수업은 윤리와 리더십을 소설이나 영화를 활용해 토론하며 가르치는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하루씩 수업을 진행했다. 교수는 옆에 서서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결론만 맺어 주는 역할을 했다. 수업시간에 한국인이라고는 나 혼자였고, 대부분 미국과 유럽 학생들이었다. 나와 짝을 지은 학생도 미국인이었다. 그러니 같이 진행하더라도, 영어도 서투른데다 미국 수업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은 나는 보조적 역할만 하면 될 거라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업 직전에 조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와 함께 진행하기로 했던 학생이 개인사정으로 수업을 철회했다는 것이다. 혼자 진행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대형사고였다.

어릴 적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좀체 없었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할 때면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무대에 서 있으면 심장 고동 소리가 내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이건 말을 먼저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그것도 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다. 심지어 MIT의 MBA학생들 앞에. 상당수가 글로벌 기업에서 컨설턴트, 애널리스트, 마케터 등의 역할을 하던, 외향적인 발표의 달인들이다. 공격적인 질문과 토론을 서슴지 않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무대에 섰다.

처음에는 째깍거리는 강의실 뒷벽 초침이 너무 크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토론이 진행되면서, 놀랄 정도로 침착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내 작은 코멘트도 경청하는 학생들의 진지함이 느껴졌다. 나는 어느 새인가 토론을 능숙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1시간 30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그날 수업은 제3세계에서 정치적으로 핍박받는 야당 지도자의 이야기를 놓고 리더십과 윤리를 토론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거기 비밀이 있었다. 나는 군인 출신이 대통령을 이어가며 정치갈등이 끊이지 않던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정치적으로 핍박받는 야당과 재야인사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이해하던 사람이었다. 어떤 윤리와 리더십 이슈가 거기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선진국 시민이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들은 몰랐고, 어느 순간 그런 사실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게는 자신감이 돌아왔고, 그들은 나의 서투른 영어조차도 경청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연결이 미덕인 시대다. 카카오톡 창이 몇 개 열려 있느냐가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지는 시절이다. 프리젠테이션 실력이 내용 이해능력보다 더 느껴지는 시대다. 그래서 우리는 표현에 중독된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그림을 찾기 위해 기꺼이 밤을 새운다. 그 시간 참고문헌을 펼쳐들 엄두는 내지 않는다. 하지만 MBA시절 수업시간, 내 영어는 어눌했지만 그들은 나를 경청했고 내 말을 따라 토론했다. 내가 가진 내용에 대한 경의 때문이었으리라. 그 순간만큼은, 가장 내성적이던 내가 모두를 이끄는 리더였고 유능한 진행자였다. 내가 가진 경험의 특수성과 지식의 깊이 때문이었다.

10여년 전 강의실의 그 날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서는 일이다. 연결이 미덕인 시대에도, 결국 내용이 형식을 압도한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내면의 내가 바로 서야 제대로 된 연결이 가능하다. 둘이 만나서는 게 아니다.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

답글 남기기

댓글 작성을 위해서는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