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_책] 가을엔 책을 읽겠어요

글 허윤희, 신소윤, 하어영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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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글·그림 / 창비 펴냄 / 1만6천원

20대 사회초년생 이시다는 서울에서 혼자 산다.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는 그는 “‘1일 작업 8시간’ 중장비보다 오래 일”한다. 피곤에 찌들어 집에 돌아온 뒤 햄스터 ‘쥐윤발’을 돌본다. 그는 읊조린다. “견딜 만큼은 불행해도 괜찮은가봐.”

김정연 작가의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 1>은 ‘1인 가구’ 이시다를 통해 도시 속 ‘혼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2015년 12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 웹툰에 연재된 만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쓸쓸한 청춘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았다.

<혼자를…>은 흑백톤의 그림체와 냉소적인 대사로 도시 독립생활자의 삶을 담아낸다. 시다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다, 귀한 몸이시다’의 ‘이시다’를 따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실상의 ‘시다’는 ‘시다바리’로 산다. 20대 무산자 여성의 도시 삶은 건조하고 서늘하다. 그 밑바탕에는 어려운 사회 상황에서 포기할 것이 많아진 ‘N포 세대’ 청년의 정서가 깔려 있다.

시다처럼 20대 삶을 사는 김 작가는 현재 주거문제, 노동문제를 겪는 청년으로서 느끼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이 만화를 그리게 됐다. 20대 여성인 작가 자신이 이 시대의 또래 여성 이야기를 그린 셈이다. 그만큼 만화에는 작가가 현실에서 경험했을 만한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만화 속 앵글은 위에서 아래를 보여준다. 김 작가가 리빙박스 안 햄스터를 보는 구도다. 의도된 시선으로 찬찬히 만화를 들여다보면, 120리터 플라스틱 리빙박스 안에 있는 햄스터 쥐윤발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는 시다를 볼 때 울컥하게 된다. 기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에 살다 작은 원룸으로 옮긴 시다는 계속되는 야근과 낮은 임금을 감수한다. 눈앞에 닥친 삶을 살아내다보니,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게 어려워진다. 김 작가는 시다를 이렇게 그렸다. “공간 꾸미기를 좋아하고 취향이 분명한 시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내 것은 없고 무언가 쌓이는 것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한다.”

무심한 듯 내뱉는 이시다의 독백은 슬프고도 서늘하다. “전 저의 인생이 필름 없는 카메라 앞에서 취하는 포즈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습니다.” “오늘도 모두가 치사량까진 아닌 밤을 넘기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위로하는 건 따뜻한 코코아와 백허그해주는 카디건.

그래도 이시다는 집에 돌아와 스스로 자신을 길러낸다. 그렇게 오늘을 꿋꿋하게 살아낸다. “개인의 삶이란 결국 자기 스스로를 잘 운용해 나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내가 매일의 승리를 쟁취하는 편이 좀더 나은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감정은 오늘의 나만이 지니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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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술연구소>

제현주·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펴냄 / 1만5천원

“내일은 막막하고 마음은 불안한 시대, 좋은 일상을 만드는 구체적인 기술을 연구합니다.”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는 1년 넘도록 같은 오프닝 멘트로 방송을 시작한다. “인생을 잘 사는 건 자신도 없고 너무 먼 얘기처럼 느껴지던” 이들은 매일의 일상을 좀더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얻고 싶었다.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는 체력을 얻으려면 얼마나 운동을 해야 할까. 아끼고 아껴서 구멍이 나는 통장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노동의 개미지옥에서 버티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 제현주씨는 막막한 미래를 그리며 불안해하기보다 시선을 앞으로 짧게 당겨보길 권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지 연구하다보면 그다음엔 이번 한 주를, 이번 한달을 살아낼 단단한 힘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12명의 기술자가 등장한다. 첫 번째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을 불안의 한복판에 놓는 가장 큰 요인인 ‘돈’이다. 많이 벌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고, 적게 쓰고 싶어도 늘 씀씀이가 만만찮은 이들을 위해 ‘기술자’ 박미정(경제교육협동조합 푸른살림 대표코치)씨가 전하는 기술은 이렇다. 부채를 자산이라 여기지 말 것, 정당화되는 소비는 없다. 어디에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예컨대 책을 사는 것은 좋은 소비, 싸구려 옷을 사 모으는 건 나쁜 소비라고 구분지을 필요가 없다. 자신의 소득 상황을 인지 못하는 소비가 가장 나쁜 소비다. 100만원을 버는데 150만원어치 책을 사는 건 올바른 소비습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미정 기술자는 소비를 줄이려면 한 항목을 정해 한달간 지출하지 않는 방법을 권한다. 한달 동안 시도해봤는데 죽을 만큼 힘들다면 그 항목은 다시 지출해도 되고, 끊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면 계속 사지 않는다. 돈 관리 기술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키를 잡는 일이다.

노동과 소비로 이분화한 삶이 너무 팍팍하다면 아랑(문화로놀이짱) 기술자가 전하는 손으로 만드는 기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쓸모’나 ‘돈 되는 일’로 삶을 판가름하지 않고, 몸을 쓰며 얻는 순수한 기쁨을 놓치지 않기 권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생산할 능력을 가진 제작자로서의 삶”은 소비하는 인간으로서만 존재하는 나를 넘어서는 길이다.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서 느껴지는 성취감은 대단하다. 하지만 당장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을 리는 만무하므로, 이 영역의 기술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은 비숙련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내 손과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에 집중하면 어느덧 ‘만드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 아랑 기술자의 전언이다.

이외에 일상을 유지하는 작은 내공들이 깨알같이 쏟아진다. 카오스 같은 물건들 사이에서 ‘잘 쌓고 잘 찾는’ 축적과 정리의 기술, 시도와 포기를 반복하는 운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기 위한 ‘운동 자존감’을 키우는 기술 같은 것들이다. 모든 기술자가 강조하는 핵심 기술을 요약하면 두 가지다. 첫째,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둘째, 일단 마음을 먹었으면 시동이라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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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인문학>

박영순 지음·유사랑 그림 / 인물과사상사 펴냄 / 1만9천원

인류는 ‘매혹의 음료’ 커피를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까? <커피인문학>은 커피가 전파된 길을 되짚어가며 커피의 기원과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커피 역사는 1천년이 넘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됐고, 예멘에서 처음 경작됐다.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반도로 전해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아라비아의 와인’이라는 뜻의 ‘카와’라고 불렸다.

지은이는 커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혁명의 시대에 커피는 혁명가들과 함께 했다. 프랑스에서 커피는 계몽사상을 일깨운 각성제로, 카페는 민중의 혁명 의식을 고취한 아지트로 활약하며 프랑스혁명을 이끌어냈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 ‘카페 르 프로코프’에서 프랑스혁명의 지적 기원으로 꼽히는 <백과전서>가 공동 편집장 드니 디드로와 장르 롱 달랑베르에 의해 처음 기획됐다. 이 카페는 이후 26년 동안 <백과전서>가 완간될 때까지 계몽사상가들의 아지트로 활용됐다.

커피는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독립혁명을 촉발한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키는 중요한 오브제로도 한몫했다. 영국은 1764년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처음 설탕에 세금을 부과한 데 이어 1765년에는 인쇄물에도 ‘인지 조례’라며 세금을 매겼다. 버지니아 의회는 즉각 “대의권 없는 과세는 식민지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며 반발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매일 모여 토론하고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던 곳이 1697년 보스턴에 문을 연 커피하우스 ‘그린 드래건 태번’이었다.

더불어 커피사에 숨겨진 잔혹함도 짚는다. 17세기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의 인력을 커피 재배 노예로 동원했다. 유럽에서 점점 커피 소비량이 늘어나 기존 식민지만으로는 물량이 달리자 새로운 땅을 점령해 커피나무를 심었다. 16~19세기 노예선에 실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커피농장으로 끌려간 흑인은 4천만여 명에 달했다. 이들을 착취해 유럽 열강들은 큰돈을 벌었다.

책 속으로 떠나는 커피인문학 여행. 커피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그럴 때 잠시, 책 속에 담긴 앤 모로 린드버그 작가의 말을 음미하자. 커피 한잔을 마시며.

“한잔의 커피를 들고 침묵이라는 사치를 누려보세요. 잔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마냥 바라보며 여러분 속에 내재된 ‘또 하나의 나’와 교감을 나누며 이렇게 격려해주시면 어떨까요. 그래, 나는 잘 살고 있어.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자. 그리고 매 순간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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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각권 1만6300원

7년 만의 장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 ‘나’는 젊다. 여전하다. 대체로 전작 소설의 ‘나’가 그래왔듯 말수가 적다. 또 일상에 성실하다. 장을 보고 요리의 밑재료를 다듬어 냉동과 냉장으로 구분한다. 비닐랩을 씌우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해 질 녘 자신만을 위한 요리도 한다. 그래서 하루키 마니아라면 ‘나’가 요리할 때 하루키의 전작 소설을 레시피 삼아 간단한 맥주 안주를 준비해야 한다. 음악도 필요하다. “해가 지면 와인을 따고 오래된 레코드를 들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이참에 오디오를 한번!’ 하며 침을 꼴깍 삼켰을 법하다. “오후에는 주로 오페라를, 밤에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를 들었다”는 대목에서는 ‘아, 어쩔 수 없군’ 하며 유튜브라도 검색해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나를 발견한다. 이뿐만 아니다. 카키색 치노바지와 크림색 보트슈즈를 입은 등장인물을 보며 ‘역시 나에겐 가을 옷이 조금 부족해’라고 느낄 것이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이렇듯 익숙하다. 이혼 통보를 받은 ‘나’가 여행 뒤 한 노화가의 집을 거처로 삼으면서 숨겨온 그의 작품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가 뼈대다. 여행과 저 너머 세계 등을 보며 “하루키, 또야?”라고 반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작 <1Q84>와 비교해볼 때 <기사단장 죽이기>는 여러 면에서 녹록지 않다. 우선 화가인 ‘나’의 작업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꽤 고된 정신노동이다. 여기에 이전 작품처럼 ‘부재의 개념어’가 반복해 등장하며 난이도를 높인다. 돌직구를 던지던 마무리 투수가 날카로운 슬라이더까지 탑재한 느낌이랄까.

여기에 430쪽까지 150개 구절에 찍힌 방점은 운동화에 숨어든 날카로운 파편 같다. 거의 2쪽에 한번씩 문장 위에 콩콩콩 찍힌 방점은 일단정지 신호 같다. ‘어떤’ 존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간단한 일 아니겠느냐” “뻔한 일 아니겠느냐” 등)인 경우도 있지만, “꼭 이 집이어야만 했던”처럼 등장인물 멘시키의 목소리(상황 설명보다 하루키의 의도로 보이는)인 때도 있다. 심지어 “굉장히 굉장히” 같은 굉장히만으로도 굉장히 과한 표현도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하루키가 2006년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와의 대담에서 언급한 커미트먼트(참여, 헌신)의 태도가 녹아들었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1937년 난징대학살과 같은 시기에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진 나치의 만행은 극적 구성의 주요 장치로 기능한다. 물론 과거 역사 논쟁에 관해 하루키는 “역사에서 순수하게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전쟁은 안 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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