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너머] 잘못 사신 겁니다

글 : 이원재

<꽃보다 할배>에 나온 할배들은 팔팔하다. 70대의 신구와 이순재는 노익장을 과시한다. 30대와 40대를 지배하고 부릴 듯한 기세다. 예전 노인이 아니다. 그분들은 ‘잘사신’ 할배들일까?

김용하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의 말을 따르면 그분들의 통장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알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나이가 들어서 65살이 돼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면 인생을 잘못 사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잘사신’ 분, 그러니가 기초연금을 받지 않아도 되는 분들은 소득 상위 30%에 해당한다. 부부 통장에 돈이 3억4천만원 이상 있으면 여기 해당하는 ‘잘사신 분’이다. 집과 자동차를 갖고 있으면 소득이 좀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더 잘사신 분이다. 나이 들었는데 돈 없고 집 없고 차 없으면, 잘못 산 사람이다.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한국은 스스로 ‘정말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다.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9.1명이다. 최근 10년 동안 10명 넘게 늘었다. 게다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2.5명이고, 우리가 재정위기로 망했다고 알고 있는 그리스는 3.3명이다. 한국인은 그리스인보다 9배 더 자살한다. 그만큼 더 ‘잘못 살았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더 심하다. 10만명당 100명 넘게 자살한다. 압도적인 세계 1위다. 놀랍게도 이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모범적으로 성장한 나라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나라는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은 60년 동안 100배 넘게 뛰어올랐다. 민주화가 이뤄졌고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기도 한다. 밀가루 배급받아 살아가던 경제에서 자동차와 스마트폰 만드는 글로벌 기업도 나왔다. 시비 걸 만도 하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왜 자살하느냐고.

독일 메르켈 총리에게서 힌트를 찾자. 유럽의 리더로 떠오르고 있는 그녀는 최근 행복에 관심이 많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져도 행복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아이러니에 착안했다. 그럴 만도 하다. 모두가 칭송하는 독일 경제이지만, 소득 격차는 점점 더 커진다. 기업 이익은 늘지만 임금은 늘어나지 않는다. 밖에선 모두가 칭찬하지만 안에서는 모두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런 고민 속에 행복을 지표로 만들어 경제성장률 대신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 묻는다. 경제성장이 행복을 자동적으로 가져다주던 시대는 지났다. 집과 자동차와 예금통장을 향해 평생을 달리던 삶은 유통기한을 넘겼다. 김용하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지금이야말로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를 통째로 뒤집어 생각할 때라고.

‘잘사는 것’에 대한 한 가지 가설을 세워보자. 20대에는 튼튼한 기업에 취직해 열심히 배우며 일한다.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30대가 되면 일부는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해 날개를 편다. 50대 중반이면 인생 한 막을 정리하고, 보수는 적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시작한다. 아이를 가르치고 숲을 지키고 문화재를 설명하고 글을 쓰는,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70대 중반이면 생산 활동에서 은퇴해 문학과 예술을 즐기며 여생을 보낸다. 어떤가?

물론 전제 조건이 있다. 20대에 취업할 안정된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져야 한다. 50대 중반 이후에 보수는 적지만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기관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연금이 주어져야 하고, 자식 교육에 돈이 거의 들지 않아야 하며, 의료와 돌봄 서비스는 제공되어야 한다. 정치의 몫이고, 정책의 몫이다. 하지만 당신의 몫도 있다. 청소와 경비노동에 종사하는 분들도, ‘잘사신’ 분이다. 그런 분들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그런 꿈을 지닌 사람들을 응원해야 한다. 내 목을 조르는 것은 괴물이 아니다. 나의 냉소와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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