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온도] 우리는 [이런] 사이다

글 조은식, 한예은 대학생 기자 / 사진 손홍주

우리는 사람 때문에 울고 사람 때문에 웃는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 그들의 독특한 관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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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사이다

예림이와 친구들은 모두 바보들이다. 고등학교에서 만났고, 다들 미술과 재학생들이었다. 지금, 20살이 되어선 대학을 간 친구도 있고, 해외로 간 친구도 있고, 재수 중인 친구도 있고, 상황은 모두 약간씩 다른데, 그럭저럭 자기답게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황보는 우리 사이가 조심스러운 것 같다. 부주의하고 왈가닥인 스스로가, 아주 섬세하게 공들여 만든 찻잔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길 위를 집중해서 걷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친구들도 황보를 똑같이 소중하게 대해줘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서현이는 프랑스로 떠난 우정이의 송별회로 뭉쳤지만, 이제는 점점 지질함으로 뭉쳐가는 것 같다. 문정이는 우리가 우정이라 말하기엔 너무 깊어, 사랑의 어떤 종류로도 칭하기 힘든 관계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제약도 긴장감도 없는, 영혼이 자유로운 관계. 함께하면 고통도 슬픔도 잠시 잊고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것 같다. 준영이는 우리가 굳이 어떤 사이다, 라고 말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낯간지럽다. 예림이는 우리가 그냥 편안하다. 솔직할 수 있고,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어딘가 빤한 말 같지만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서영이는 여러 명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로 눈에 띄게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상극인 것 같지도 않고, 굳이 말하자면 다들 헛소리를 잘하는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를 항상 ‘안티소셜클럽’ 같다고 한다. 사회 안티인들이 모인 것 같아서다. 얘기를 하다 보면 “아, 이거 왜 이래?!”, “진짜 이상해”, “이해가 안 가” 이러다가는 “아마 우리가 제일 이해 안 가는 것 같아”라고 일단락된다. 7명이 다 모일 때가 있고, 또 저 안에서 3명씩 만나고, 4명씩 만나는 경우도 많다.

예림이에게 인간관계는 항상 어려운 느낌이 있다. 남과 있는 게 불편하다기보단, 타인이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겠지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친구들과 있을 때는, 서로에게 뭔가 요구하지도 않고, 행복하길 강요하지도 않고, 그냥 함께 존재하는 것 같다. 헤아릴 수 있는 사랑은 가난하다고 했는가. 우리는 사실 헤아리고 싶지도 않고, 헤아릴 수도 없는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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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뜬금없는] 사이다

은식이가 대학 동기 채연이의 SNS에서 윤정이를 본 건 정말 우연이었다. 그 둘은 중학교 동창이니, 은식이에게는 친구의 친구다. 은식이는 웃고 있는 윤정이를 본 순간, 자신이 준비 중인 영화 시나리오 속에 살고 있는, 바로 그 순수한 사람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을 처음 봤을 때처럼 헉 소리가 났다. 실제의 모습은 어떨까,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으로부터 한 달 뒤, 우연히 채연이와 연락이 닿아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고, 은식이는 윤정이 얘기를 꺼냈다. “나, 너 친구 팔로우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채연이가 윤정이와 같이 있다는 말을 했고, 며칠 뒤 셋은 만나게 되었다.

은식이는 한참 ‘친구란 무엇일까’라는 물음과 치열하게 씨름 중이었는데, 뜬금없이 이루어진 윤정이와의 만남이 재밌어서, 이것저것 물어볼 겸 같이 전시회를 보러 가자는 약속을 잡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윤정이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게 오랜만이라 낯선 관계가 주는 어색함을 걱정했다고 한다. 혼자 다니는 전시회에 익숙했던 각각은, 킥킥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어느새 찾아온 전시 마감 시간에 맞춰 함께 쫓겨났다.

자신에게 친구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오던 은식이는, 윤정이를 이렇게 실제로 만나게 될 줄 몰랐고,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봐왔던 것 같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윤정이의 말에 따르면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도움의 요청과 수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꼭 엄청난 게 아니더라도 “야 나와, 맥주 한 잔 하자”, “그래, 어디야?”와 같은 사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 말이다. 만나면 하루가 짧고, 얘기를 나눌 땐 시계가 고장 났다. 어느 치즈 가게 아저씨가 둘이 무슨 사이냐고 물어봤는데, 윤정이가 “친한 친구예요”라고 대답하는 걸, 은식이는 들었다. 뜬금없지만 은식이에게 친구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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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사는] 사이다

예은이는 다래와의 첫 만남이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2014년, <캠퍼스 씨네21> 4기 기자단의 첫 회의였다는 건 알고 있다. 뻔하디 뻔했다. 설렘과 떨림, 그리고 어리바리함에 둘러싸여 있었다. 다래는 예은이에게, 아직 이름도 얼굴도 외우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다. 한 학기는 쏜살같이 지나갔고, 아쉬움이 컸던 예은이와 다래는 <캠퍼스 씨네21> 5기 기자단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날이었다. 역사적인 날. 5기 기자단끼리 노래방에서 미친 듯이 놀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예은이의 집은 저 멀리 인천이었고, 어쩔 수 없이 예은이는 평창동의 다래 본가에서 하루 신세를 지게 되었다. 둘은 다음날의 해가 뜰 때까지 별별 얘기를 다 나눴다. 예은이가 다래의 집에 한눈에 반해버린 건 그때였다. 아침이면 목탁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는, 산 앞자락에 위치한 2층 집. 순한 대형견 ‘쏠’이 있고, 테라스에서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곳. 자신이 그리던 집이자 ‘인생에 한 번쯤 꼭 살고 싶은 집’이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예은이를 뒤덮었다. 다래는 5기의 임기가 끝나고 기자단을 그만두었지만, 예은이는 7기까지 기자단 생활을 이어갔다. 그래도 두 기수를 함께한 덕에 둘은 이 바닥에서(?) 제일 친한 사이다. 연남동과 신촌 등지를 떠돌면서 연애담을 풀며 깔깔 웃기도 하고, 어떻게 30살까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고민도 진지하게 나눈다.

대외활동에서 만난 인연은 그저 그런 인맥일 뿐이란 예은이의 편견이 깨졌다. 그리고 2017년 8월 22일. 다래의 별채 원룸에 예은이가 입주했다. 주민등록도 옮겼다(!). 그렇게 대외활동 절친 동료에서 동거인 아닌 동거인으로 업그레이드(?)한 다래와 예은이. 영화 데이트도 하고, 신촌 맛집도 돌아다니며 아주 깨를 볶으며 잘살고 있다. 아, 어제 새벽에도 달밤의 밀월(?)을 나눈 것은 비밀이다. 예은이의 원룸에서 다래의 방을 가려면 사다리 2개와 다리 하나를 올라, 까만 밤의 하얀 달을 등진 채, 베란다 문과 방충망까지 젖혀야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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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 같은] 사이다

경미는 중국어 공부를 위해 1년간의 유학길에 올랐었다. 마지막 2달 만을 남겨놓았을 때, 서울, 인천, 대전, 춘천, 산본에서 온 5명을 만났다. 서로는 서로에게 학우, 룸메이트, 이웃, 중국어 말하기 대회 연습 상대, 또는 친구의 친구였다.

상은이가 경미를 처음 만난 날, 같은 방을 쓰기로 결정하고 인사를 했다. 서로 존댓말을 썼고, 어색했다. 그때는 친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누가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해서, 즉흥적으로 버스를 탔다. 성원이는 바다에 가면 어색해진다고, 상은은 추워서 싫다고 했지만, 경미와 성현이가 끌고 갔다. 덜덜 떨면서 맥주를 마셨는데, 그 다음날 다 같이 감기에 걸렸다. 상은이에게, 친구들과 함께한 밤바다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같은 바다에서 별을 올려다보며 가장 빛나는 별이 상은이 별, 그 주변 별들이 나머지 사람들이니까, 나중에 꼭 다시 와서 저 별들을 바라보자 다짐했다. 성원이는 대련민족대학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을 때, 은채, 태효, 경미, 상은이를 한국에 먼저 보냈다. 성현이와 둘이서, 모두 함께 있었을 때 갔던 곳들이나 맛집을 찾아 다녔는데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성현이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두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 같이 군대 간 성현이의 면회를 갔다.

경미는 대학교 진학 후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학교에선 시끌벅적. 그러나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친구도 막상 술 한 잔 하자고 불러내기 뭐했다. 과제 물어보고 취업 얘기하는 그런 관계였으니까. 그래서 대련에 가서도 한국인과는 아예 친해지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돌아서는 순간 남이 될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부분을 대련에서의 인연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게 경미는 신기하고 또 고맙다. 영화 <연애의 발견>에는 “널 만날 때, 가장 나 다울 수 있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게 이 친구들에게 통한다고 할까. 씻지 않은 모습도, 아픈 모습도,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다.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서야 만났지만 가장 아이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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