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우리들의 ‘뉴 월드’ – <꿈의 제인>의 구교환, 이민지

글 김송희 / 사진 오계옥 / 장소제공 카페 오다가다×카롱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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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여기 우리 집 앞이었어!” 표지 촬영을 위해 카페 밖에 나갔던 구교환이 소리 질렀다. 촬영을 진행한 카페가 알고 보니 구교환이 평생 살았던 동네였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30년간 사진관을 운영했고, 사진관은 그가 감독한 <연애다큐>(2015)에도 주요하게 등장한다. 바로 옆이 친구가 하는 피자집이라며 “저기 월드피자, 맛있어요. 치즈피자 드시”라며 추천한다. 촬영 후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창밖으로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 구교환을 알아보고 눈인사를 한다. 익숙한 공간과 사람이 나타나자 구교환에게서 <꿈의 제인>의 제인이 겹쳐졌다. 활달하고 강인하며 주변까지 환하게 만드는 제인. 이민지는 ‘독립영화에서는 상업 배우로, 상업에서는 독립영화 배우로 인식해서 애매한 위치’라는 기존 인터뷰 답변을 되묻자 ‘그런 고민들은 있지만 그리 확실하게 말한 건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때 이민지도 <꿈의 제인>의 소현으로 겹쳐졌다. <꿈의 제인>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제인은 트렌스젠더이며 클럽의 디바이고, 가출팸의 엄마다. 소현은 그 가출팸에 살며 제인에게서 처음으로 안정을 느낀다. 약자가 공존하는 이야기, <꿈의 제인>을 간략하게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꿈의 제인>은 현실과 비현실을 경계 없이 오가지만 거기에 낙관적인 생명력을 더한 것은 구교환과 이민지였다. 그래서 인터뷰 중간 중간 구교환이 제인으로, 이민지가 소현으로 겹쳐졌을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꿈의 제인>으로 두 사람 다 올해의 배우상을 타고 여기저기 인터뷰를 많이 했다. 같은 영화를 9개월 만에 복기하고 인터뷰를 다시 하는데 어떤가.

구교환_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만들 때 감정이 다르고 처음 극장에서 볼 때의 감정이 또 다르고… 계속 변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꿈의 제인>을 보니 또 다른 생각이 들고 인터뷰 때 하는 답변들도 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지나서 이 영화를 한번 다시 보고 싶다. <꿈의 제인>은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특히 (이)민지씨 연기는 볼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고 재미있다.
이민지_ 아, 오빠가 괜히 그러신다. 음, 나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때 사람들을 만나서 <꿈의 제인>을 설명할 때랑 지금의 감정이 또 다른 것 같다. 어제서야 영화가 개봉(5월31일 개봉)하는 게 실감이 났다. 시사회에 같이 했던 스탭과 가족들을 초대했다. 상영관에 들어가 인사할 때 관객 얼굴을 보는데 ‘이 영화가 진짜 개봉하는구나’ 싶어서 긴장도 되고 그러더라.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이다.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과 개봉 후 관객을 만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구교환_ <꿈의 제인>을 2015년 5월부터 촬영해서 가을 정도에 끝났는데 영화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엄마 같은 영화다. 음, 친구 같기도 하고. 영화를 하나 찍으면 그 영화에 여러 마음들이 드는데 <꿈의 제인>은 나에게 엄마에 가깝다. 내게는 이런 영화인데, 관객은 또 어떻게 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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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지 배우는 상을 탄 후 “계속 배우를 해도 괜찮겠구나” 싶었다고 들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방영 후였는데 당시 어떤 고민들이 있었던 건가.

이민지_ <응답하라 1988>로 대중적인 인식은 생겼지만 다음 작품을 하기까지 공백이 생겼다. 그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는 단편영화로 참여한 적은 많았지만 장편으로 배우상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짐승의 끝> 이후 장편영화는 5년 만이었는데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이라 부담도 많았다. 감독님들이 상 받던 단상에 올라가 내가 직접 상을 받으니 정말 떨렸고 뭔가 응원받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지지의 박수를 쳐주는 것 같아서 울컥했다. 울진 않았지만. (웃음) 나처럼 평범한 연기를 하는 사람도 계속 연기를 해도 좋다는 지지를 받은 것 같았다. 계속 연기를 해나가다보면 좋게 봐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계속 버텨봐라라는 의미로도 다가와서 용기가 됐다.
구교환_ 연출로 상을 탄 적은 있는데, 배우상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이었다. <꿈의 제인>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계속 기다려왔던 멋있는 캐릭터를 만난 것 같았다. 역할을 볼 때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느냐 아니냐가 중요한데 제인이란 인물은 모든 게 궁금한 여성이었다. 제인은 ‘팸’에서는 가장이지만 클럽 ‘뉴월드’에서는 디바이고, 소현(이민지)에게는 동료이고,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런 매력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게 기쁜 일이었는데 상까지 주셨다. 계속 연기해도 좋다는 오해를 할 수 있게 상을 주신 것 같다.

연기를 계속해도 좋다는 오해를 하는 구교환 배우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웃음) 연출과 연기 사이에서 무게추가 어디에 더 기울어져 있나.

구교환_ 같은 것 같다. 찍히는 것도 좋아하고 찍는 것도 좋아한다. 꼭 둘을 구분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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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의 첫 등장 장면을 보면 벼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너무 예쁜 언니가 갑자기 문을 열고 나타나는데 꿈이 열리는 것 같기도 하고.

구교환_ 제인이 소현을 만날 때 재회하는 기분이 들어야 했다. 대사도 “돌아왔구나”라고 한다. 감독님의 시나리오에 재회라는 단서가 있었 고 단번에 ‘이 사람은 내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왜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보자마자 좋은 감정을 느낄 때가 있지 않나. 제인도 소현에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싶었고, 제인이 소현을 데리고 언덕길을 내려갈 때 두 사람이 마음을 터놓게 되는 감정이 느껴졌다.

소현과 함께 살던 정호와 제인은 연인이었고, 정호는 소현을 버리고 사라진다. 그 와중에 제인은 왜 소현을 집으로 데려갔을까.

이민지_ 데려간 것보다도 ‘주웠다’에 가깝다. (웃음)
구교환_ 영화에서 소현도, 제인도 너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전체 영화를 돌이켜보면 ‘왜’를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은 것 같다. 서사가 순차적으로 나열되지 않고 특별한 구조를 가진 영화라 장면 장면에 충실했다. 그 장면에서도 그냥 감정에 충실했던 것 같다. 인물이 왜 그럴까,를 관객이 해석해주면 좋겠다. 매 순간 우린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가슴 아픈 장면도 있고 행복한 장면도 있는 거고.
이민지_ 이건 꿈이고 이게 현실이야, 라고 구분하지 않고 연기했다. 연기할 때에는 모든 걸 현실이라고 받아들였다.

제인은 가출 팸의 ‘엄마’이기도 하고, 트랜스젠더이기도 하다. 구교환 배우가 말한 대로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지만 어떻게 보면 정형화된 연기를 할 수도 있는 역할이다. 그래서 더 어렵게 접근하지 않았나.

구교환_ 내가 제인을 만든 게 아니라 만났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감독님이 만든 제인을 나는 옮겨놓는 역할이었던 것 같고. 시나리오를 읽고 제인을 준비하는 과정도 물론 있었겠지만 영화에서는 민지씨의 영향이 컸다. 민지씨가 굉장히 유연한 배우다. 대부분이 민지씨와 함께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민지씨가 연기하는 소현이 나를 바라보고 반응하는 모습들을 보고 제인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대단한 배우다. 원래부터 팬이었다. (웃음)
이민지_ (매우 부끄러워하며) 오빠, 그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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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식 때 제인의 모습으로 스탭 앞에 나타났다고 들었다.

구교환_ 마침 제인의 가족사진을 찍는 소품 촬영날이어서 감독님께서 “오늘 첫 회식자린데 제인을 스탭들에게 이렇게 소개하면 어떠냐”라고 제안하셨다.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제인의 모습으로 불고깃집에 갔다. 근데 감동적인 게 다들 나를 제인으로 대해줬다. 관객 전에 인물을 만나는 게 스탭이다. 영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스탭들을 설득하지 않으면 배우가 너무 어려운데 다들 아무렇지 않게 나를 제인으로 대해주었다.
이민지_ 스탭들과 함께 제인을 그날 처음 봤는데, 교환 오빠가 제인 분장을 하고 딱 나타났는데 “아, 제인이구나” 바로 설득이 됐다. 제인은 어떻게 보면 허구의 인물이고, 어떤 여성일지 상상조차 안 해봤는데, 일단 제인이 너무 예뻐서 놀랐다. 그런 제인의 모습을 보고 ‘뉴월드’가 실존하는 공간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불고깃집에서 밥 먹기 불편하진 않았나. 제인은 항상 풀메이크업인데. (웃음)

구교환_ 제인을 연기하기 위해 체중을 감량하고 유지해야 할 때라 고기를 먹지는 못했다. 냉면이랑 다른 걸 먹었던 것 같다. (웃음) 체중감량할 때 제작진이 몸 상하지 말라고 마그네슘이랑 비타민도 챙겨줬다. 망원유수지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계속 <꿈의 제인> 주제곡을 들었다. 제인과 딱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씩씩하게 달렸다.

영화의 주제곡을 들으면 딱 ‘제인’이 그려진다. 음악을 들으며 제인과 만났겠다.

구교환_ 연기할 때 레퍼런스로 음악을 많이 듣는데, 도움이 된다. 연기하기 위해 살을 10kg 감량했다고 관련 기사가 많이 나갔다. 인터뷰할 때 그것부터 물어보더라. 근데 역할을 만들 때 배우라면 당연히 하는 일이라 그 부분만 부각될까봐 걱정이다. 그보다 제인의 밝고 행복한 모습들을 많이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에서 제인은 명대사 제조기처럼 보인다. 특히 “불행은 안 끊기고 이어지는데, 행복은 아주 가~아끔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해”라는 대사가 너무 좋더라. <꿈의 제인>을 가장 잘 드러내는 비관을 담은 낙관적인 대사 같다.

구교환_ 현실에선 행복과 불행, 그 둘의 밸런스가 잘 맞춰지는게 좋은 것 같다. 행복과 불행 사이를 잘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아야지, 너무 ‘행복행복행복’ 하면 그것도 좀 이상하고, 불행만 계속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인이 그 대사를 모래 뿌리듯이 한다. 제인이 평소에 삶의 명대사 같은 걸 툭툭 던지지 않나.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훈계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혼잣말인데 자기의 삶의 태도를 말하는 거다. “어차피 개 같은 인생 혼자 살아서 뭐 해”라면서 바로 공존을 얘기한다. “그래서 같이 사는 거야” 취권 같았다. 유머가 있으면서도 툭툭 던져놓는 제인의 방식이 좋았다.
이민지_  나도 행복과 불행을 왔다 갔다 한다. 작품을 하고 있을 때에는 “이거야, 난 잘하고 있어” 했다가 작품 끝나고 쉴 때에는 착 가라앉기도 하고. 생각이 일직선이 아니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웃음) 나는 제인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 보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 모습. 자기 철학을 그냥 중계하고 방백하는 거지 다른 사람의 삶에 참견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이상향에 가까웠다. 이런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소현에게 제인이 크게 다가왔고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을 바꾸게 한 인물일 거다.
구교환_ 제인의 대사 중에 좋아하는 게, “그럼 된 거예요”다. 그게 희망적이었다. 제인이 일하는 클럽 이름이 ‘뉴월드’다. ‘새로운 세상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어떤 희망에 도착하게 하는 영화 같다.

제인은 공을 좋아한다. ‘제인이 둥근 공’을 든 장면이 거의 이 영화의 코믹 포인트다. (웃음) 나도 그 장면에서 엄청 웃었는데, 그 장면의 제인의 대사나 몸짓은 구교환 배우가 만든 것인지.

구교환_ 원래 시나리오에 있었던 부분이다. 감독님이랑 제인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누었지만 어쨌든 배우로서는 감독님의 쓰임을 받는 입장이라.
이민지_ 교환 오빠가 현장에 있는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만든 장면들은 있는데, 영화의 큼직한 내용들은 대본에 있는 거였다. 예를 들어 소현이 초콜릿 먹는 장면에서 오빠의 말투나 행동 같은 것들.
구교환_ 내가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걸 좋아해서. (웃음) 소현이 혼자 몰래 나와서 초콜릿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시나리오에서 그걸 읽을 때 민지씨가 어떻게 먹을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민지씨가 먹는 장면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너 치사한 애구나”라는 대사가 나오더라. (웃음)

그게 힐난하는 게 아니라 무척 귀엽다는 듯의 말투다.

구교환_ 어떻게 그걸 안 귀여워할 수가 있겠나. (웃음) 항상 우리는 웃기려고 연기하지 않고 진지하게 다가가지만 보는 사람은 거기서 웃음을 발견하면 좋겠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톤이고 정서인 것 같다. 나는 그 순간에 너무 진실한데 보는 사람은 웃길 수도 있는.
이민지_ 이게 재미있는 장면으로 표현됐지만,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소현이가 애잔하다고 느껴졌다. 이 친구가 초콜릿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집에 있는 친구들 몰래 혼자 나와서 짧은 시간 동안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아이였던 것 같았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고 사랑을 주는 법도 배운 적 없는. 사회화가 될 기회가 없었던 아이. 그래서 사람 속에 어떻게 섞여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불쌍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제인을 만나서 사랑을 배우고 희망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음, 상투적이지만 <꿈의 제인>이니까, 두 사람의 꿈을 마지막으로 물어야겠다.

구교환_ <스타워즈> 시리즈에 출연해서 엑스윙을 조종하는 역할을 하는 것.
이민지_ 드레스 입고 시상식에 가보고 싶다. (웃음) 해외영화제에도 참석해보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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