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현실에선] “족구하는 소리하고 있네” <족구왕>

글 김정현 대학생 기자 / 사진 박예담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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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록을 만드는 걸 즐긴다. 말하자면 목록성애자라고 할 수 있겠다. 분야와 내용을 막론하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는 것부터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사소한 것까지 다양한 목록들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음악 플레이리스트. 하나의 테마를 설정하고 거기에 들어맞는 음악들의 목록을 구성한 것인데, 상황이나 계절, 장소 등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둘 만들다 보니 현재 내 휴대폰에는 35개가 존재한다. ‘아침’, ‘비’처럼 다소 넓고 추상적인 범위의 것도, ‘제주-해질녘’처럼 실제 경험의 기억이 반영된 것도 있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하늘과 구름 내다보며 앤젤릭 브리즈의 <Morning Aura> 듣기’, ‘런던 거리 정처 없이 헤매며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 듣기’처럼 버킷리스트 성격을 띠는 것까지 자리하고 있다.

‘아무도 몰라줘도 좋을 사소한 자부심의 목록’은 어떤가. 아, 이것 참 은근히 자부심 느끼게 해준다. 2주전인가, 그날 내 자부심의 목록엔 ‘마을버스 기사님께 유일하게 나만 “감사합니다” 인사했음’이 추가되었다. 그 밖에도 ‘불만과 짜증의 목록’, ‘같이 가는 사람별로 다르게 정한 여행하고픈 도시’ 등 나에게 목록은 충분히 많고 또 만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쯤 되면 묻고 싶어지겠지. 대체 목록이란 게 뭔데 그렇게 집착하십니까?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게 재미있으니까,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 안간힘 쓰는 중인 거다. 거창하게 포장 좀 하면 말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나답게 산다는 건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그들을 위한, 그들에 의한 나가 아니라 나를 위한 나, 나로부터의 나. 내 마음대로 살아야 한다. 잘났든 못났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목록을 만드는 것도 그런 거다. 이미 정해놓은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기어이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창조하고 구성해보려는 노력. 요즘 젊은이들은 노.오.력.이 부족해서 문제라는데, 이런 노오력이면 좀 어떨지 싶다. 아아, 기특한 젊은이 아닌가!

여기 기특한 젊은이 하나 추가한다. <족구왕>의 만섭(안재홍) 얘기다. 좋아하는 목록 한번 확실하다. 그 이름도 거창한 ‘족구’. 다들 걱정과 조롱과 비웃음을 날려대는데, 이에 만섭은 답한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공무원 준비나 하라’고 선배들이 조언해봐도 만섭의 눈엔 취업에 도움 1도 안 되는 족구뿐이다. 주야장천 족구만 해대는 건 그냥 멍청해서가 아니다. 토익, 자격증, 봉사활동 등 스펙으로 대표되는, 타인들이 중요하다고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기준이 중요하기 때문인 거다.

묻는 것도 답하는 것도 지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다. 무력해서, 이토록 무력하고 또 무력해서, 더더욱 놓치지 않을 거라고 되뇌어본다. ‘나’를 잃어버리지는 않겠습니다. 나마저 희미해지면 그땐 정말로 삶을 버틴다는 게 공허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나만큼은 지켜내겠습니다. 끊임없이 나를 또렷하게 떠올리고 주시하는 삶. 지금 여기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나는 그걸 산다. 내가 듬뿍 담긴 목록들을 습관처럼 만들어가면서.

언젠가는 올 거다.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게 민망하지 않은 날이. 당연해야 할 일이 당연하지 못해서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곧 그날은 온다. 내가 자연스럽고 내가 편안한 삶. 그리하여 있는 힘껏 나를 누리는 삶.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이라고 혀를 차도, 뭐. 남 잘난 맛에 사는 것보단 섹시하겠지. 말 한번 참 쉽게 하는 너는 그래서 뭘 할 거냐고? 음, 가만 있자… 이번에 새로 만들 목록이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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