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미리 메리 베이케이션 ④

글·사진 이재오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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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강을 옆에 두고 달렸다

멀리 갈 생각은 없었다. 그럴 힘도 시간도 모자란다. 그야말로 ‘요즘’ 대학생들의 이야기다. 한푼 한푼 아껴서 멀리멀리 구경가는 여행도 좋지만 누구든 무일푼으로라도 문득 떠나고 싶을 때가 있는 법. 이유를 막론하고, 해소하고 털어버리고 싶을 때 우리는 매우 한정적인 선택지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포근함을 밀어내고 녹음이 자리를 차지하려는 지금, 보다 짧고 가벼우면서도 몸을 써야 하는 일탈을 원했다. 취향이 하드코어한 나는 직접 카메라를 메고 자전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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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보단 힘듦이, 힘듦보다 여유가

해가 지면 제법 쌀쌀하지만 해가 있음 그렇게 더울 수가 없다. 적어도 지난 5월의 공기는 그랬다. 그 더운 몸을 이끌고 밖을 나섰다. 내 자전거는 몇해 전 중고로 팔아넘긴 지 오래라 당장의 여행을 함께해줄 친구가 필요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눈길을 줬지만 결국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던 그 친구. 서울시의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나름의 작은 여행을 돌아보기로 했다. 참고로 따릉이는 회원가입 시 시간당 1천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왕십리의 한 정거장에서 따릉이를 빌리고 근처의 중랑천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한양대역을 지나 살곶이다리 부근에서 중랑천으로 들어섰다. 한강을 구성하는 여러 하천 중 하나인 중랑천은 크기가 상당해서 자전거 도로가 잘 발달해 있다. 호기롭게 도착한 중랑천은 딱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모습 그대로다. 탁 트인 자전거도로와 눈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하천이 펼쳐졌다. 물가에 펼쳐진 억새풀은 바람에 춤추고, 강가 내음이 후각을 자극했다.

그날 최고온도가 31도에 육박했던 탓에 체력이 굉장히 금방 소진됐다. 아무래도 평소 운동을 안 한 탓이 큰 듯했다. 힘듦이 몰려오니 내일의 걱정이 고민의 대상에서 한발 물러나게 됐다. 그래도 중간중간 쉼터가 꽤 있었다. 분명 한달 전까지만 해도 벚꽃이 흩날렸던 곳인데, 지금은 푸른 잎사귀가 우거져 있다. 계절이 참 숨가쁘게 변한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던 부분. 순수하게 페달만 30분쯤 밟았다. 갈림길과 함께 응봉교가 나왔다. 이곳을 건너면 중랑천이 한강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쯤 되니 당장의 힘듦까지도 머릿속에서 잊히고 여유가 몸에 서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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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한 시대의 평화로움

응봉교를 건너 그 앞의 쉼터에 오면 나와 같은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이 짧은 여행도 어느새 중간까지 온 셈이다. 끝없는 직선도로를 달리다보니 왼쪽으로 꺾어지는 완만한 커브가 보였다. 천천히 경치를 구경하며 꺾다보니 너른 하천 옆으로 보이는 뚝섬 부근 빌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숲이 꽤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 또 어느 정도 신나게 달리다보니 매우 이색적인 풍경과 함께 서울숲으로 가는 통로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용비교 밑으로 뚫려 있는 자전거 통로는 서울숲의 생태공원, 꽃사슴 서식지와 연결되어 있다. 근데 이 통로가 또 꽤나 비범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강공원엔 간혹 바다를 연상케 하는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몇군데 있는데, 여기가 그랬다. 물에 비치는 햇빛이 눈을 기분좋게 따갑게 했다. 그 뒤로 뚫려 있는 용비교의 지하터널이 무색할 만큼 고이 간직하고 싶은 풍경이자 장소가 거기 있었다.

조금 음침하면서도 꽤 길었던 터널을 지나면 놀라울 정도로 수풀이 우거진 곳이 나온다. 서울숲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강 특유의 촉촉한 내음이 사라지고 편안함을 자아내는 배경소음이 귓가에 흘러나온다. 평일 저녁인데도 날이 좋아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목이 좋은 곳만 골라서 웨딩사진을 찍고 있었다. 문득 강구연월(康衢煙月)이란 말이 떠올랐다. 태평한 시대에 평화로운 거리 풍경을 일컫는 고사성어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생각이 태평해졌나보다. 뭐, 진짜 태평성대가 우리에게 도래한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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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내일을 내려놓기

포장도로를 찾아서 가다보니 널찍한 광장에 도착한다. 너른 광장을 몇 바퀴 돌아서 서울숲역쪽으로 나가니 반환소가 있었다. 정확히 두시간 동안 서울, 한강, 숲을 여행했다. 이래저래 쉰 시간을 빼면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참고로 30분만 더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뚝섬 유원지에 도착한다.

새삼 알찬 시간이었다. 운동도, 여유도 부족하다보니 내일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 정도 시간도 투자하지 못한다면 무슨 행복이 있으랴. 조금만 인상 쓰고 달리다 보면 금세 내일을 내려놓은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출발했는데, 어느덧 뉘엿뉘엿 노을이 지고 있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평범한 일상을 마무리 지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이 지극히 간단한 일탈을 다들 한번쯤 즐겨보는 게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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