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너머] 사과하면 이긴다

글 : 이원재

“실장님, 하루 종일 무슨 일을 그리 바쁘게 하시는지 봤더니, 두 가지 일밖에 안 하시네요. 사과와 격려.”

나는 2012년 대통령선거 때 안철수 후보 캠프의 정책기획실장을 맡고 있었다. 선거판은 전쟁터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때였다. 새벽부터 밤까지 회의가 이어졌고, 십여분에 한번씩 전화벨이 울렸다. 스무명 안팎의 상근 인력과 200명이 넘는 외부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매일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만들어내야 했다. 이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었고, 모두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다만 모두 의견이 달랐다. 자발적으로 모인 수평적 네트워크의 특징이었다. 이들의 의견을 모으고 조정하는 게 내 주된 일과였다.

사과와 격려. 그런 나의 하루를 지켜본 동료가 무심결에 던진 말이었다. 시시각각 바뀌는 선거 일정이었다. 누군가 애써 밤새 작성한 자료가 아침이면 폐기되어야 했고, 누군가 평생 고민했을 깊이 있는 정책도 한두 마디로 요약되어야 했다. 매일 누군가는 무시당한 기분이었고 화를 냈고, 누군가는 그 화를 받아내야 했다. 그 사정을 아는 나는 늘 미안했고, 화내는 이들에게 늘 사과했고, 화를 받아낸 이들을 늘 격려했다. 사과는 그렇게 수평적 네트워크를 조율하는 핵심 기제가 됐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World Young Leaders Forum’에 참석했다. 전세계에서 모인 320여명 중 말이 통하는 프랑스 친구를 만났다. 조금 친해졌다 싶어 대화 중 넌지시 물어봤다.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른 지 수십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지내는 거지?” 이 친구, 대답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래, 사실 난 독일 사람과 결혼했거든.”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 결국 모든 것은 독일의 태도에서 출발했다. 독일은 끊임없이 제대로 된 사과를 했다.

1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한 당시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나치의 대학살로 숨진 유대인 추모탑 앞에서 예정에 없이 무릎을 꿇고 침묵의 사과를 한다. 진심을 담은 이 한 장면은 폴란드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을 열고 적국이던 이웃 독일과 슬픔을 나눈다. 젊은 독일인들도 움직였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자세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과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나치에 조금이라도 협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지금까지도 공직 박탈의 이유가 될 정도다. 독일이 열심히 사과하면서 유럽연합도 만들어지고 평화도 만들어졌다는 게 그 친구의 설명이다.

국제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마찬가지다. 사과하면 많은 문제가 풀린다. 사과하면 많은 이들이 내 편이 된다. 사과하면 많은 경우 사람들을 이끌 수도 있다. 어쩌면 사과는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문득 최근 기초연금과 관련해 나왔던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떠오른다. 대통령은 기초연금 공약 수정으로 어르신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청년들이라고 연금제도 수정으로 혜택을 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따지고 보면 좀더 불안해지는 모양새가 된다. 청년들은 어쩌다가 사과조차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사실 사과받을 자격도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이를 획득하는 것 역시 중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누군가 사과할 때, 제대로 받을 줄 아는 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이건 또 하나의 긴 이야기가 되니, 여기서 글을 맺는 점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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