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씨] 코스튬 디자이너로 사는 법

글 : 심은하

개봉을 앞둔 <크림슨 피크>의 깊고 음울한 고딕 로맨스는 의상과 함께 피어오른다. 이 작품의 코스튬 디자이너 케이트 홀리에게 이메일을 보내 <크림슨 피크>의 분위기를 엿봤다.

코스튬 디자이너 케이트 홀리

코스튬 디자이너 케이트 홀리

코스튬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흔히들 영화 속 의상만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코스튬 디자이너의 역할이 영화에서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감독 외에도 프로덕션 디자이너, 헤어와 메이크업, 소품, 스턴트, CGI(컴퓨터그래픽 이미지), 특수효과 등의 팀들과 함께 소통해야 한다. 영화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다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따라서 제작팀이 스탭, 배우들과 형성하는 관계는 작업 과정 대부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작품인 <크림슨 피크>의 현장을 예로 들어 덧붙인다면.
기예르모 델 토로와 제작자 캘럼 그린은 마치 우리가 한 가족인 것처럼 현장을 이끌었다. 긴밀한 협력은 영화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모든 결과물에 스며들었다. 그중 프로덕션 디자이너 톰 샌더스팀과의 작업은 정말 끝내줬다. 그는 록스타이면서 동시에 재능이 넘치는 신사다.

코스튬 디자이너로 영화계에 입문한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연극 공연이나 오페라 무대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코스튬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게비 델랄 감독의 <온 어 클리어 데이>(On a Clear Day, 2005)에서 처음으로 영화 코스튬 디자이너로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전에 몇몇 단편영화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은 있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영화들을 작업하다 피터 잭슨(<러블리 본즈>, <호빗> 3부작), 기예르모 델 토로(<퍼시픽 림> <크림슨 피크>) 등 세계적인 감독들의 블록버스터에 참여했는데 어떻게 그들과 인연이 닿았나.
예상치 못한 시기에 늘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더라. 몇년간 영국에서 지내다가 뉴질랜드로 막 돌아왔을 때였다. 필리파 보엔스와 피터 잭슨 감독을 소개받을 기회가 몇번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터가 <러블리 본즈>의 작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해왔다. 나에겐 첫 번째 대형 상업영화였다. 이를 계기로 피터와 특별한 프로젝트에서 작업을 진행하던 중 기예르모가 <호빗> 제작을 준비하기 위해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피터가 “둘이서 작업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며 소개해줬다. 기예르모는 자신의 책장 목록과 비슷한 호러물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마음에 들어 한 것 같았다. 말로는 오페라와 연극 무대 배경 디자인 경력이 있다는 점에 끌렸다고 했지만.

영화의 장르와 시대에 따라서 작업도 달라질 것 같다. 원칙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 코스튬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
각자 장르별로 나름의 어려움은 있다. 프로젝트에 따라 추구하는 미학이 바뀔 수 있고. 예를 들어,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 나오는 엑소 슈트(exo suit)나 <크림슨 피크>의 드레스는 엄청난 에너지와 기술, 부품을 쏟아부었다. 장르에 관계없이 이 점은 다 똑같다. 우선 캐릭터의 특성에 맞춰야 하고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한다. 그 후 캐릭터가 그 배경 안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 등의 실용적인 면을 살펴본다.

<크림슨 피크> 톰 히들스턴.

<크림슨 피크> 톰 히들스턴.

평소 어디에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나.
현재 존재하는 모든 문화에서 유사성을 발견함으로써 현실에 기반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데, 이것이 작업의 시작점이다. 아이디어를 서로 딱 들어맞게 하고 그중에 필요한 것을 추출해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창의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약간 엽기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마치 범죄과학수사 활동처럼. 아이디어끼리의 서열을 고려한다. 그것이 풍경이든 건축이든지 간에 난 항상 반응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의상을 통해 구현해낼 수 있는 형태인가?”라고 끝없이 질문한다.

이번 작품인 <크림슨 피크>에 대해 얘길 해보자. 고딕풍의 화려한 의상이 그로테스크한 기예르모 델 토로 세계관과 잘 어울린다. 기예르모가 요구한 큰 방향이 있었나.
기예르모 감독은 <크림슨 피크>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데 있어 색채를 통해 뚜렷하게 구별되는 두 가지 세계를 원했다. 영화는 미국 버팔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곳은 곳곳에서 드러나는 가을 색채의 풍부한 느낌을 통해 1890~1900년대 산업화와 더불어 엄청난 부가 표현되는 황금빛 세상이다. 반면 앨러데일 홀의 세계는 쇠퇴하는 귀족층이라는 특징과 빈털터리, 황량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청록색의 차가운 청색과 눈으로 뒤 덮여있는 세상이다.

주요 캐릭터의 의상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어떻게 달라지나. 먼저 이디스(미아 와시코브스카)부터 듣고 싶다.
토마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디스의 금빛 드레스는 점점 밝아지고 풍부해진다. 옷에 장식된 꽃들은 피어나고 소매는 넓어지면서 실루엣 역시 더 부풀려진다. 그러다 저택이 이디스를 잠식해 나가면서 그녀가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잠옷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마치 퇴색된 번데기처럼. 세트와 가구의 모습을 반영하면서 그녀의 소매를 점점 줄여나갔다.

토마스(톰 히들스턴)와 루실(제시카 채스테인) 남매는 고딕 로맨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이디스와 굉장히 대조적인데.
버팔로에서 처음 등장하는 루실과 토마스의 모습은 주변을 감싸는 황금색 톤과 대조를 이루면서 어두운 그림자처럼 두드러진다. 이 둘은 거의 30년 앞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데 의도적으로 선택한 의상이다. 이디스가 토마스의 신부로 앨러데일에 도착하는 시점에 이르면 마치 베일이 벗겨지듯이 토마스 남매의 원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의 의상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낡고 화려함에 그대로 스며있는 세월과 쇠퇴한 귀족의 느낌이 강조된다. 실루엣도 집의 건축을 반영하면서 기예르모가 원했던 키 크고 마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루실의 옷은 마치 저택의 벽면의 일부처럼 점점 퇴색된 청색이 되어간다. 디테일을 위해 세트 장식용 디자인을 선택해서 드레스를 제작했다. 예를 들어 잎사귀와 덩굴, 동물 발톱 모양의 도토리는 저택의 복도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앙상해 보이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드레스는 마치 피부처럼 딱 들어맞고 버슬(bustle, 드레스 허리받이)과 옷자락은 루실이 절대 떠날 수 없는 저택의 탯줄과 같다.

<크림슨 피크>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코스튬 디자인을 꼽는다면.
하나를 선택하기가 무척 어렵다. 하지만 기예르모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의상은 말해줄 수 있다. 루실이 버팔로에서 피아노 칠 때 입었던 핏빛 드레스다. 그 드레스는 촬영 막바지에 기예르모의 요청으로 제작한 건데 중요한 상징을 나타낸다. 붉은색은 과거와 피 한 방울을 뜻한다. 등쪽의 레이스는 캐릭터의 앙상함을 두드러지게 하는 요소다.

당신에게 일상에서의 옷과 영화 속 옷의 개념은 다를 것 같다. 평소 옷 잘 입는 법을 알려줄 수 있나.
중간색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거의 유니폼이나 다름없다. 일터에 갈 때는 옷에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캐릭터들에 어떤 의상을 입힐지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니까. 그렇다고 내가 옷이나 예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나라면 아마 멋진 핸드백이나 스카프, 코트 등에 투자할 거다. 아, 괜찮은 레드 립스틱도.

코스튬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는 20대들이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
금전적 보상이 없는 일이라도 경력을 꾸준히 쌓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내 경우 학생 때는 연극 무대에서 일하면서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었다. 디자이너 보조로 일하면서는 모델 제작, 캐릭터 스케치하는 작업을 배웠다. 매일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가는지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나의 주변을 살펴보는 거다. 종종 평범하게 보이는 것들이 특별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절대 구글 검색에 의존하지 마라. 난 사진이나 흔치 않은 디테일들을 모아서 따로 보관해둔다. 독서를 하기도 하고 갤러리를 방문하기도 하는데, 겉보기에는 별로 상관없거나 성격이 달라 보여도 나에게 새로운 정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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